차명계좌에 맡긴 돈을 써 버렸다면 횡령일까

COLUMN · 형사·재산범죄

작성 2026. 10. 16. | 로엘법무법인 양기오 변호사

신용불량 등으로 자기 이름의 통장을 쓰기 어려워 가족이나 지인 명의 계좌로 돈을 관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명의인이 그 돈을 써 버리면, 맡긴 사람은 횡령으로 고소할 수 있는지부터 막막해집니다.

특히 "애초에 남의 이름을 빌린 쪽도 떳떳하지 않으니 보호받을 수 없다"는 반론이 자주 나옵니다. 이 문제에 관해 2026년 6월 나온 대법원 판결로 차명계좌와 횡령죄의 관계를 정리합니다.

Q. 차명계좌에 맡긴 돈을 명의인이 써 버리면 횡령죄가 되나요?

횡령죄가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26. 6. 25. 선고 2025도13722 판결은 돈을 맡긴 사람이 채무초과 상태에서 차명계좌를 썼다는 사정만으로는 횡령죄의 보호 대상인 위탁관계가 부정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이 판결은 무죄를 유지한 원심을 파기환송한 것으로, 유무죄는 환송심에서 다시 판단됩니다.

동생 명의 계좌로 5년간 운영한 횟집

이 사건의 피해자는 운영하던 건설업체가 원청 부도로 문을 닫으며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따로 사는 동생의 동의를 받아 동생 명의로 횟집 사업자등록을 하고, 동생 명의 계좌를 사업용으로 썼습니다. 두 사람은 매출금을 그 계좌에 두되 동생이 임의로 쓰지 않기로 약정했습니다.

약 5년간 이어진 관계는 2023년 5월 동생이 계좌 비밀번호를 바꾸고 열흘 남짓 동안 38회에 걸쳐 약 5,500만 원을 쓰면서 깨졌습니다. 제1심과 원심은 형이 채권자들의 강제집행을 피하려고 차명계좌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이를 파기해 광주지방법원으로 환송했습니다.

횡령죄는 '보호할 가치 있는 위탁관계'를 요구합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사람이 이를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할 때 성립하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형법」 제355조 제1항). 여기서 보관은 위탁관계에 따른 점유를 뜻합니다.

대법원은 이 위탁관계를 횡령죄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해 왔습니다. 부동산 명의신탁에 관한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과 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6도18761 전원합의체 판결은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해도 신탁자에 대한 횡령죄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번 판결은 그 경계를 구체화했습니다. 약정에 근거한 위탁관계를 보호가치가 없다고 보려면, 약정이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인지, 맡긴 행위가 범죄 실현 수단이었는지 등을 종합해 형사법적 보호가 전체 법질서상 허용되기 어려운 정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분부동산 명의신탁이번 사건의 차명계좌
약정의 효력부동산실명법상 무효면탈 목적이 없으면
효력이 부인되지 않음
위탁관계불법적 관계로
보호가치 없음
보호가치 있는 신임
임의 사용·처분 시신탁자에 대한
횡령죄 불성립
횡령죄 성립 가능
(환송심에서 다시 판단)

채무초과였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대법원은 돈을 맡긴 사람이 채무초과 상태에서 차명계좌를 썼다는 것만으로는 그 위탁을 강제집행면탈죄의 실행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사자 관계, 계좌 개설 시기와 목적, 사용 경위와 기간, 강제집행을 당할 구체적 위험 등 객관적 상황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3조 제3항은 강제집행 면탈 등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 명의 금융거래를 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런 목적이 없다면 타인 명의 거래라는 사정만으로 약정의 사법상 효력이 부인되지 않는다고 보았고, 이는 대법원 2001. 1. 5. 선고 2000다49091 판결의 취지와 같습니다.

이 사건에는 위탁 당시 채무 규모나 강제집행의 근거 채권, 채권자의 소송·가압류 준비를 보여 주는 자료가 없었습니다. 과거 통장 압류가 있었다는 피해자 진술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진술만으로 강제집행 위험을 단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부도 후 약 8년이 지나 생계를 위해 계좌를 만든 점, 5년간 분쟁이 없었던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차명계좌를 맡긴 쪽과 빌려준 쪽이 확인할 것

이 판결은 채무초과만으로 보호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지, 차명계좌면 언제나 횡령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강제집행이 임박한 상태에서 재산을 숨기려고 계좌를 빌렸다면 위탁관계의 보호가치가 부정될 수 있고, 돈을 맡긴 사람 자신이 강제집행면탈죄(「형법」 제327조)나 금융실명법 위반으로 문제될 수도 있습니다.

실명이 확인된 계좌의 돈은 명의자 소유로 추정되므로(금융실명법 제3조 제5항), 돈을 맡긴 사람은 자신이 출연했다는 점과 임의 사용을 금지한 약정을 증명해야 합니다. 필자가 형사 사건을 상담하다 보면, 가족 사이라 약정을 말로만 해 두어 입출금 내역 외에는 자료가 없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입금 기록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미리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친족 사이의 횡령은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고(「형법」 제361조·제328조 제1항), 범행 시점에 따라 적용 규정이 달라집니다. 자세한 내용은 친족상도례, 형 면제는 없고 고소만 남았습니다에서, 부동산 명의신탁의 처벌 문제는 명의만 빌려줬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에서 정리했습니다.

정리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횡령죄는 보호할 가치 있는 위탁관계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둘째, 차명계좌를 썼다거나 채무초과였다는 사정만으로 그 위탁관계가 곧바로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셋째, 이 판결은 파기환송이어서 이 사건 피고인의 유무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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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대법원 2026. 6. 25. 선고 2025도13722 판결 /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6도18761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2001. 1. 5. 선고 2000다49091 판결 — 국가법령정보센터
· 「형법」 제327조·제328조·제355조·제361조 [시행 2026. 10. 2., 법률 제22007호] — 국가법령정보센터
·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3조·제6조 [시행 2025. 4. 1., 법률 제20894호] — 국가법령정보센터
· 같은 날 발행 칼럼: 음주운전 사고부담금, 운전 안 한 차주도 내야 하나

양기오 로엘법무법인 파트너변호사 (형사본부)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법 전문 변호사 · 이혼 전문 변호사
서울고등검찰청·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익법무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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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실관계는 대법원 판결문의 범위로만 서술했습니다. 인용한 판결은 무죄를 유지한 원심을 파기환송한 것으로, 피고인의 유무죄는 환송심에서 정해집니다. 당사자 신상과 업체·지역 세부는 기재하지 않았으며, 본 칼럼은 해당 사건의 수임과 무관합니다. 개별 사건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광고책임변호사: 이태호 | © LAWL LAW FI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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