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 안 된 렌털 기계, 렌털료를 내야 하나

COLUMN · 민사

작성 2026. 10. 14. | 로엘법무법인 임흥준 변호사

렌털계약서에 서명했는데 기계는 들어오지 않았고, 렌털료 청구는 렌털회사가 아닌 캐피탈사에서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계약서 하단의 채권양도 승낙란에 서명했으니 낼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대법원은 2026년 8월, 설치되어야 효력이 생기는 렌털계약에서 설치 사실을 누가 증명해야 하는지, 이의 없이 채권양도를 승낙한 계약자가 무엇을 주장할 수 있는지 판단했습니다. 그 판결을 정리합니다.

Q. 렌털 기계가 설치되지 않았는데 이의 없이 채권양도를 승낙했다면 렌털료를 내야 하나요?

내지 않아도 될 여지가 있습니다. 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6다202594, 202595 판결은 계약서에 설치되어야 효력이 생긴다고 정한 렌털계약을 정지조건부 계약으로 보고, 설치 사실은 렌털료를 청구하는 쪽이 증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설치되지 않아 계약이 무효라면, 이의를 보류하지 않고 채권양도를 승낙했더라도 그 사유로 채권을 넘겨받은 캐피탈사에 대항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이 다시 심리하라고 한 커피머신 렌털 사건

이 사건 계약자는 2023년 10월 30일 렌털회사와 커피머신 렌털계약을 맺었습니다. 렌털료는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월 83만 3,330원, 기간은 설치일부터 48개월이었습니다. 계약서에는 제품이 인수되어 설치되어야 효력이 생긴다는 조항이 있었고, 하단 승낙란에는 렌털회사가 렌털료 채권을 캐피탈사에 넘기는 데 이의 없이 승낙한다는 문구와 계약자의 전자서명이 있었습니다.

계약자는 캐피탈사에 세 차례 렌털료를 낸 뒤, 2024년 3월 렌털회사를 상대로 계약 무효 확인 소송을 냈고 계약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됐습니다. 판결문에는 계약 다음 날 같은 회사에 3,000만 원을 맡기고 매달 135만 원의 수익금을 받기로 한 계약서도 작성된 사실이 나오지만, 대법원은 그 계약의 성격을 따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캐피탈사는 렌털료를 청구했고 계약자는 이미 낸 돈의 반환을 구했습니다. 원심은 계약 당시 통화에서 계약자가 설치됐다는 취지로 답했고, 회사가 지정하는 다른 장소에 설치되는 데 동의했다는 등의 이유로 계약의 효력이 생겼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해 수원지방법원으로 환송했고, 렌털료를 내야 하는지는 환송심에서 다시 판단됩니다.

'설치되어야 효력'이라면 설치 사실은 청구하는 쪽이 증명합니다

정지조건이 붙은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된 때부터 효력이 생기고(「민법」 제147조 제1항), 조건이 성취되지 않으면 무효로 확정됩니다. 대법원은 조건이 성취됐다는 사실을 그 계약으로 권리를 얻으려는 쪽이 증명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정지조건부 채권양도에서 양도의 효력을 주장하는 쪽에 증명책임을 둔 대법원 1983. 4. 12. 선고 81다카692 판결도 같은 취지입니다.

쟁점원심대법원
계약의 효력통화 답변·장소 변경 동의로
효력 발생
지정 장소에 실제 설치돼야 효력
설치 사실은 캐피탈사가 증명
이의 없는 승낙무효 사유로
캐피탈사에 대항 불가
미설치 무효는 승낙 뒤 생긴 사유
캐피탈사에 대항 가능

계약자가 회사 지정 장소에 설치되는 데 동의했더라도, 대법원은 그 장소에 기계가 실제로 설치되어야 렌털료 채권이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통화에서 설치됐다고 답한 사정만으로는 기계가 이미 설치돼 있었고 계약자가 이를 알고 답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원심은 실제 설치 여부를 심리한 다음 효력을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의 없이 승낙했어도 나중에 생긴 무효 사유는 주장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451조 제1항은 채무자가 이의를 보류하지 않고 채권양도를 승낙하면 양도인에게 주장할 수 있던 사유로 양수인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합니다. 대법원은 이 규정이 승낙을 믿은 양수인을 보호해 거래 안전을 꾀하려는 것이라고 보면서도, 채무자는 승낙 당시 이미 있거나 가까운 장래에 생길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사유에 대해서만 이의를 보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양도 뒤에야 생긴 사유이고 승낙 당시 그 가능성을 상당한 정도로 인식하지 못했다면, 채무자는 그 사유를 양수인에게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 승낙 당시에는 설치가 예정돼 있었으므로 미설치로 인한 무효는 승낙 뒤에 생긴 사정이라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조건이 붙은 장래 채권의 양도를 승낙할 때에는 조건이 성취되지 않으면 갚지 않겠다는 뜻이 전제돼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대로 승낙 당시 대항사유가 가까운 장래에 상당한 정도로 생길 수 있음을 알면서 이의를 보류하지 않았다면 주장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 2018. 7. 24. 선고 2016다205687 판결은 채권 질권 설정을 승낙한 사안에서 이 기준을 확인하면서, 질권자가 악의이거나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승낙 당시까지 생긴 사유로도 대항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렌털 계약자가 남겨 둘 기록

이 판결로 계약자가 렌털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환송심에서 회사가 지정한 장소에 기계가 실제로 설치됐는지가 다시 심리되고, 설치가 인정되면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설치 여부를 보여 주는 자료가 분쟁의 중심이 됩니다.

필자가 렌털·리스 계약 상담을 하다 보면, 계약할 때 형식적으로 서명한 설치확인서나 통화에서 설치됐다고 답한 기록이 나중에 다툼의 근거로 쓰이는 경우를 봅니다. 계약서의 효력 발생 조항, 설치확인서, 설치 장소를 바꾸기로 한 약정, 실제 설치 사진이나 배송 기록을 함께 보관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조건을 둘러싼 다른 쟁점은 조건성취 방해한 건축주, 약정금 5천만 원 지급 판결에서 정리했습니다.

정리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설치되어야 효력이 생기는 렌털계약에서 설치 사실은 렌털료를 청구하는 쪽이 증명합니다. 둘째, 이의 없이 채권양도를 승낙했더라도 승낙 뒤 생긴 미설치 무효 사유는 양수인에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이 판결은 파기환송으로 실제 설치 여부와 최종 결론은 환송심에서 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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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6다202594, 202595 판결 / 대법원 1983. 4. 12. 선고 81다카692 판결 / 대법원 2018. 7. 24. 선고 2016다205687 판결 — 국가법령정보센터
· 「민법」 제147조·제451조 [법률 제21454호, 시행 2026. 3. 17.] — 국가법령정보센터
· 같은 날 발행 칼럼: 수용 토지 안 비우면 이행강제금, 12월 17일부터

임흥준 로엘법무법인 변호사
서울 근무 / 민사·가맹 사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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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실관계는 대법원 판결문의 범위로만 서술했고, 당사자와 회사명·제품명·설치 장소는 적지 않았습니다. 인용한 판결은 원심을 파기환송한 것으로, 실제 설치 여부와 렌털료 지급 의무는 환송심에서 정해집니다. 대법원 2016다205687 판결은 채권 질권 설정에 대한 승낙 사안입니다. 본 칼럼은 해당 사건의 수임과 무관합니다.
광고책임변호사: 이태호 | © LAWL LAW FI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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